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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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교회 2008. 4. 18. 22:12

식구들의 시선은 계양산을 향한다. 엄마가 맨 앞에 달리고 언니와 동생이 그 다음, 아빠는 맨 뒤에서 가족을 코치한다. "얘들아, 앞을 봐야지 어딜 보냐. 언덕이다. 기어 변속해라." 그렇게 달려 도착한 솔밭. 주위는 온통 소나무로 가득하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은 나무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이 식혀주고 닦아준다. 돗자리를 펴고 음식 가득한 배낭을 풀어놓는다. 꿀맛이다. 아이들은 웃음보가 터졌고 엄마와 아빠도 정겨운 얘기를 주고받는다.

인천 계양구 장기동에 거주하는 최동식(40)씨. 김포 풍무중앙교회 목사이기도 한 그는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자전거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 왕복 2시간이 걸리는 단거리이지만 가족간 대화를 늘리고 운동 효과도 높다고 자랑한다.

2년 전 일요일 오후, 교회 예배를 마치고 지나다 발견한 계양산 근처 솔밭은 가족이 즐겨 찾는 휴양지가 됐다. "소나무향을 맡으며 잠시 쉬었던 그곳에 가족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나무가 무성해 송홧가루 냄새가 진동할 정도였죠."

등산을 좋아했던 최씨는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역동성에 압도돼 MTB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 후로 인터넷을 뒤지면서 자전거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60만원 주고 자전거를 구입했다. 갑자기 자전거로 성지순례를 떠나고 싶었다. 연습 삼아 일본에 가보기로 했다. 해외 원정을 위해 인천서 서울 여의도까지 타면서 매일 훈련을 했고 오사카에서 도쿄까지 1600㎞를 10일간 여행했다.

힘들었지만 자신감도 생겼다. 성지순례를 향한 그의 꿈은 2006년에 이루어졌다. 터키에서 출발해 사도 바울의 순례길을 따라갔다. 3000㎞를 달렸다. 그후에도 중국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4년 사이 자전거 마니아로 변신한 그는 처음엔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다녔다. 특히 자전거를 거의 충동적으로 구입하고 타고 다니면서 아내와도 적잖은 신경전을 겪었다. 2004년 처음 구입했던 자전거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동호회 활동도 시작했고 자전거 정보를 깊이 접하면서 자전거 '업글'도 빠르게 진행됐다. 현재 보유한 자전거는 '스페셜라이즈드 풀에픽 카본 시리즈'로 주문해 직접 조립했다. 1000만원 정도 되는 가격이다.

"남편이 자전거 구입에 씀씀이가 커지면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자전거 값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토요일에도 타러 나간다고 해서 다투기도 했지요." 아내 정설미(36)씨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최씨가 아내를 위해 자전거 한 대를 사준 뒤로는 더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아내가 '포섭' 되자 아이들은 금세 따라왔다. 아이들에게도 자전거를 구입해줬고 큰딸 예은(13·계양초 6학년)양은 "가족과 함께 자전거를 타는 게 좋다"며 "계양산 솔밭 가서 도시락 먹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작은 딸 성은(12·계양초 5학년)양도 "언덕 올라갈 때 힘들고, 기어를 변속하는 것도 어려워서 언덕만 나오면 짜증나지만 도착하면 시원하다"며 좋아했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 소풍날을 기다린다는 정씨도 가족과 함께 타는 자전거가 너무 좋다. "목회자 집안이라 늘 교회일만 생각해야 하고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은 전무했습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아요. 교회라는 중압감에서 잠시 놓여서 자전거라는 공통 언어로 서로 얘기했던 거죠."

이들 가족의 자전거 여행 코스는 여건이 좋은 편이다. 집에서 나와 도로를 타지 않아도 되고 농로를 따라 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한적한 농로 위에서 바라보는 들판과 푸른 하늘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다.

가족 여행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전거만 탈 줄 안다고 섣불리 나서면 곤란하다. 최씨 가족도 개인별 연습은 물론 한강변까지 진출해 체력을 길렀다. 오래 달리려면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내 정씨도 고생이 많았다. 처음 한강서 탈 때는 5㎞도 못 타고 울었다. 같이 타면서 페이스 맞추기도 힘들었다. 가족과 탈 때는 혼자 탈 때와는 달라 속도를 내지 말아야 한다. 마치 다인승 자전거를 타듯 맞춰야 한다.

그동안 해외 원정을 경험했던 최씨는 가족과 함께 해외 자전거 여행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판단이다. 자전거 4대에 따르는 경비만 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곧 청소년이 되는 두 딸들도 친구들끼리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두 딸에게 방을 하나씩 주어야 하는데 방 하나에 자전거가 차지하고 있는 것도 늘 미안하다.

최 목사는 요즘 주변 목회자들에게 자전거를 보급하고 있다. 또 그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도 계획 중이다.

나만 즐기는 자전거가 아니라 함께 즐기는 여행으로 승화시킨다는 생각이다. 최씨는 올 여름 중국 내 고구려 유적지 탐방을 계획 중이다. 단둥 백두산 옌지 등을 방문하고 올림픽에 맞춰 베이징도 돌아보고 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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