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야화(易學野話) (1)
역학야화(易學野話) (1)
중국 역술인(易術人)의 예언
성종(成宗) 시대의 윤필상(尹弼商 1427∼1504) 선생은 일직이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오른 인물이다.
소시(少時)에 사신(使臣)을 수행하여 중국에 들어가 체류하는 동안 유명한 역술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평생의 운세를 보았는데, 그 역술인이 말하기를 "그대는 수명(壽命)과 지위가 모두 융성(隆盛)할 것이나 다만 삼림(三林)의 아래에서 죽게될 것이다.(壽位具隆 但終死於三林之下)" 라고 하였다.
선생은 귀국한 후에 역술인이 판단한 대로 벼슬길이 순탄하여 여러 요직을 역임하고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연산군(燕山君) 2년에는 궤장( 杖)을 하사(下賜)받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되는 듯 하였으나, 연산군 10년(1504)에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연산군의 생모(生母)인 폐비 윤씨의 폐출(廢黜)을 막지 못하였다는 죄목으로 진도(珍島)에 유배되었다.
진도의 농촌에서 귀양살이를 시작한 어느 날 저녁 때 무료하여 집 앞에 나와 농촌풍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농부 두 사람이 들에서 돌아오다가 헤어지면서 "내일 아침에 상림(上林)에서 만나자" 고 약속하는 말을 듣고 그 농부에게 "상림이 어디에 있는가" 라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여기에서 五리쯤 올라가면 그곳을 상림(上林)이라 하고 그 아래는 중림(中林) 또 아래는 하림(下林)이라고 합니다" 라고 설명한다.선생은 농부의 말을 듣고 비로소 중국 역술인의 말이 떠올라 방으로 들어가 멍하게 천장을 우러러보면서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예감하였다. 그 뒤 얼마 안되어 사약(賜藥)이 내려와서 사망하였다.
〔註〕이상은 대동기문(大東奇聞)에 있는 야화(野話)를 옮긴 것이다. 삼림(三林)의 아래에서 죽는다고 판단한 것은 사주를 보고 판단한 듯 하다. 생각하건대 아마도 尹公의 사주는 土를 필요로 하는 사주로서 사망할 당시의 운(運)이 삼합목국(三合木局)을 이루어 土를 극손(剋損)한 까닭에 삼림(三林)이라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보았다. 여하간 이렇게 귀신처럼 판단한 중국의 역술인은 달인(達人)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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